• 소셜 로그인
    • 소셜로그인 네이버,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로그인연동 서비스로 본 사이트에 정보입력없이로그인하는 서비스 입니다. 소셜로그인 자세히 보기
청야칼럼
Calgary booked.net
-29°C
총 게시물 106건, 최근 0 건 안내
이전글  다음글  목록

사라진 자작나무 숲

글쓴이 : Reporter 날짜 : 2017-06-28 (수) 21:25 조회 : 17415
글주소 : http://www.cakonet.com/b/column-109
  • 고기원 부동산
  • 이미진
  • Tommy's Pizza
  • 코리아나 여행사
  • WS Media Solutions
  • Sambo Auto

청야 김민식(캘거리 문협)

보름달이 아직도 중천에서 발그스레한 얼굴로 가로등 불빛과 어울리며 한적함을 달래는 상쾌한 밤이다. 다리를 건너자 인적이 고요한 대로변에 까치가 웅성거리고 있었다. 봄이 오면 한밤중에 어린 코요테들이 까치집을 습격을 하거나 까마귀와 집단적으로 영역싸움을 벌이느라 흥분한 까치들이 괴성을 지르며 대로변에 뛰쳐나와 정신없이 서성거리는 것을 몇 번 목격한 터라 천천히 운전을 하며 주위를 살핀다.

아뿔싸, 오른 쪽 언덕 숲이 발가벗긴 채 달빛에 오들거리고 있다.

길옆 언덕 위의 축구장보다 몇배는 큼직한 자작나무 태고의 숲이, 반나절 만에 사라진 것이다. 자기의 영역을 철저히 치키며 치열한 생존을 벌이는 까치들이, 삶의 터전을 졸지에 잃고 허탈에 빠져 안전한 길가로 피신을 한 것이다.

빨간 신호등에 차를 멈춘다. 오늘 따라 길 건너 언덕의 몸매 가냘픈 여인들이, 새로 입은 연초록 저고리가 오후의 햇살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이럴 때면 차를 돌려 숲으로 들어가 와락 껴안고 싶은 충동이 인다. 망설이다 다음을 기약하고 출근을 했는데 순식간에 사라진 일이라 애석하고 어안이 벙벙하다.

차로 1~2분, 마을을 빠져 나오면 이내 South West Fish Creek Boulevard 대로를 만나고, 바로 우회전 하면 37 Street가 시작되는데, 이곳의 왼쪽 낮은 언덕에 다소곳하게 자리 잡은 자작나무(aspen)포플러 작은 숲이 있다. 숲 언덕의 북쪽끝자락은 울창한 태고의 계곡을 따라 동서로 길게 이어지고, 계곡위로 4차선 다리가 남북을 잇는다. 숲의 서쪽 계곡은 비포장도로를 따라 숲이 10여 분 길게 이어지는데 숲이 끝나면 광활한 서티나 원주민(Tsuu T'Ina Indian Reserve 145) 땅이 끝없이 펼쳐진다. 잊히려야 잊힐 수 없는 정이 듬뿍 든 숲이다.

Image result for South West Fish Creek Boulevard birch

이 작은 숲과의 인연은 아주 오래고 깊다.

이민 다음 해 피자가게를 인수하고 막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 부근에서 피자 배달 주문이 왔다. 가게를 인수하기 오래 전부터 배달 일을 하고 있던 배달원이 바쁜 시간이라 배달을 거부한다. 차를 세우고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의욕과 열정이 넘치던 초창기 시절이라 내가 배달을 했다. 사라진 자작나무숲 길 건너 지금처럼 대규모 주택단지가 없었고 띄엄띄엄 옛집들과 사방이 울창한 숲이다. 콘크리트 다리는커녕 계곡의 샛길을 타고 내려가면 통나무 징검다리가 있었다. 난생 처음 매서운 겨울추위를 경험한 터라 살아남은 야생식물들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파인 트리 등 침엽수, 자작나무(아스펜 포플러) 활엽수가 함께하는 오솔길을 한참을 걸어 피자배달을 했다. 강풍을 만나면 부러질 것만 같은, 가냘픈 여인의 몸매처럼 늘씬한 키의 자작나무들이 마음에 들어, ‘언젠가 나도 이 근방으로 이사를 오리라’ 꿈을 꾸며 걷곤 했다. 태고의 원시림처럼 주위에 죽은 자작나무들이 사방에 즐비하다. 매우 큼직한 저택의 노인은 두툼한 배달 팁을 주곤 했는데 그 재미에 서너 번 배달을 하며 정이 담뿍 배인 숲길이다.

20여년 어간에 개발이 되고 주위에 신흥 주택들이 속속 들어섰다. 캘거리 링 로드(Calgary Ring Road) 마지막 남은 남단 끝자락 도로 연결 건설이다. 인디안 원주민들과 거대한 금전적 보상 합의를 이유로 자작나무 태고의 숲이 처참하게 파괴된 것이다. 그 자리에 27홀의 골프장과 상가, 학교가 들어선다고 한다. 토종 자작나무는 연약한 여인 같아서 트랙터로 밀면 순식간에 뿌리 채 뽑힐 것이고, 그 많은 나무들이 반나절 만에 말끔히 치워진 것이다.

나의 상상을 넘어서는 현대 문명의 횡포에 소름이 끼친다. 더 멀리, 더 이상 사람의 개발을 허용하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다.

자작나무 숲은 조림을 한 것보다 추운 지역, 아직 길도 나지 않은 다닥다닥 붙어있는 태고의 자작나무 숲을 걷는 것이 제 맛이다. 생성과 소멸을 쉽게 거듭한 탓인지, 죽은 나무들이 주변에 너절하고 어린 나무들이 쑥쑥 연신 잘도 성장을 한다. 물먹어 오래된 낙엽을 밟으면 발밑에서 철벅거리는 소리에 홀리고, 연신 온몸을 떨며 아름다운 소리로 수다를 떠는 몸매 날렵한 토박이 여인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이것을 경험하지 않은 감사의 묵상기도가 ‘참’ 일 수 있을까?

내가 틈만 나면 자작나무 숲을 찾아 묵상하는 것은, 미풍에도 몸을 떨고 춤을 추며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고, 요구하는 자연의 정신에 쉽게 순응하며, 추운 겨울과 강풍을 견디며, 오로지 하늘을 향해 몸을 쭉쭉 뻗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나, 자연과 나의 관계를 깊이 사유하며 내면을 다지는 순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가계 뒤뜰의 이태리 개량종 포플러 미루나무의 큰 가지들이 또 한 번 뚝뚝 부러져 나갔지만 자작나무는 연약해도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소멸을 딛고 선 인적이 드문 또 다른 자작나무 생성 숲을 찾아 나설 것이다. 올가을 이곳을 방문하는 초등학교 동창생 부부들과 새로 발견한 자작나무 숲을 몇 일간 산책하며 생성과 소멸의 원리를 곱씹고 싶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

총 게시물 106건, 최근 0 건 안내
제목 날짜 조회
계묘년 새해 단상 (청야)먼동의 아침놀이 구름 사이로 이글거립니다. 임인년에 이어 계묘년 새해 아침에도 지척의 로키산맥 사우스웨…
01-04 5850
캘거리 가을이 빠르게 깊어간다. 온난화 변덕이 로키산맥을 부추기는가, 여름이 해마다 늑장을 부린다.  공간을 빼앗긴 가을이 제 멋을 잃어…
10-18 7485
2022년 3월 15일 존경하는 Y형! 멀리서 봄의 소리가 연신 들려옵니다. 밖은 아직 영하의 찬바람으로 가득한데 양지바른 구석진 곳의 눈덩이를 발로 …
03-28 7116
캘거리 한인회가 주관한 제103 주년 삼일절 기념식이 2022년 3월 5일(토) 오전 11시 정각, 캘거리 한인회관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구 동현 한인회…
03-15 6879
3월 1일 아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벌써 6일째다 지난 주일 인터넷으로 우크라이나 키에프 연합교회의 비대면 생중계 주일 예배를 함께 …
03-03 7137
임인년(壬寅年) 새해 아침  일출의 전후는 쾌청하다는 일기예보에 서둘러 사우스웨스트 남서쪽, 유대인 CHEVRA CADISH CEMETERY 공동묘지 언덕에 서서 …
01-10 6924
상서로운 백옥 자태 음~메 소망의 나래 타고 여명을 휘장 찢던 빛의 그대여, 우울한 뚝심 천상의 소리가 여러 지는데   제야의 …
12-29 7407
캘거리 한인회 정기총회가 2021년 12월 11일 9(토), 예정 시간보다 무려 1시간이나 늦은 12시 정각, 캘거리 한인회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추운 날씨와 눈…
12-28 9489
캘거리는 나의 첫 정착 도시, 고향처럼 푸근한 정이 깃든 곳 갈수록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디아스포라는 태생적으로 더 좋은 …
11-29 8250
젊은 시절은 꿈을 먹고 살고 늙어갈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이 늘어간다. 그리움의 깊은 사유를 찾아서  심연에 이른…
11-10 6852
향유(享有)고달프고 불안한 굴레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자유를 누리는 것, 디아스포라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소망이다. 고난과 시련의 진흑…
10-27 11148
Happy Thanksgiving Day!  공휴일 아침 묵상의 시간이 길어진다. 지나간 2년 동안 COVID-19의 두려움과 함께한 날들을 회고하며 각오들을 새롭게 다짐한다.…
10-13 6135
내 서재에는 부모님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 액자가 하나가 걸려있다.이민을 오기 몇 해 전쯤, 강원도 기도원에서 생활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춘…
10-05 9150
낯선 전염병의 두려움에 시달리다 어두움이 짙어지면 늙음의 두려운 시간들이 시작된다. 쇠약의 언어들이 부활하고  늙은 관절의 주책없는 칼질…
09-15 10395
8월 30일자 The New York Times 인터넷신문에는 Thomas Gibbons-Neff 기자의 아프카니스탄 주둔 미군의 마지막  비참한 철군 모습을 장문의 기사가 비…
08-31 9726
가을입니다. 산불 매연 때문에 사방이 퀘퀘하고 을씨년스러워도 가을은 기어이 손끝으로 영글은  대지의 신호를 보내옵니다. 여름내내 사는 것 …
08-18 9402
8월에 들어서도  무더운 날씨의 기승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전례 없는 폭염과 가뭄이 달포가 넘도록 계속 중이다. 산불이 계속 일더니 …
08-04 7722
지금 지구촌에는 기후변화의 피해 여파가 심각하다. 불과 몇 주일 사이에 발생한 일들이다. 북미 주의 고온 열돔 현상과  유럽의 대홍수 재난 사…
07-20 9180
팬데믹 기간을 지나는 노년의 가파른 삶들이 경건한 추억들을 만든다. 추억은 회상할수록 점점 미화되어 본질을 흐리게 할 수 있다지만, 노년의 …
07-06 8937
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협) 앨버타 주민들은 온통 거리로 나와 자유와 환희의 축제를 만끽하며 들떠 있을 것입니다. 점입가경으로 주말에는 각종 종…
06-21 10413
목록
 1  2  3  4  5  6  맨끝
 
캘거리한인회 캘거리한인라이온스클럽 캘거리실업인협회 캘거리여성한인회 Korean Art Club
Copyright ⓒ 2012-2017 CaKoNet. All rights reserved. Email: nick@wsmedia.ca Tel:403-771-1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