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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가을

글쓴이 : Reporter 날짜 : 2018-10-24 (수) 00:20 조회 : 13308
글주소 : http://www.cakonet.com/b/column-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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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인 협회)

캘거리 가을이 깊어​ 간다.

가게 뒷마당 포플러 나무 잔가지 잎사귀에 가을의 전령사가 다녀가더니, 로키산맥 언저리의 광활한 광야가, 아스펜 도시답게 노랗게 빠른 속도로 물들어 간다. 지난주까지도 두 달여 동안 지속되던 무더위와 산불 매연 때문에 곤혹스러웠는데,  벌서 9월 둘째 주가 지나간다. 아침저녁의 찬 기운이 흡사 초겨울 날씨 같은, 일주일 내내 가을비가 예고되어 있다. 로키산 아래 광활한 광야의 단풍과 가을비, 얼마나 아름다운 풍광들인가.

하루하루 삶을 아슬하게 버텨낸 것들, 기적을 만들어 낸 사연들이 가을 단풍처럼 아름답다. 사연이 잔잔한. 역경 속에서도 자신을 신뢰한 굳건한 삶의 용기 덕택에, 스스로  대견해 한다. 나도  영글어 가는 가을의  단풍처럼, 인생이 영글어 가는 노년의 나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가을에 접어들자, 이 찬란한 노년의 가을, 남몰래 눈물을 글썽인다.

나는 캘거리의 가을을 사랑한다.

고도의 좌표로 보아 사계절이 설악산 중턱의 기온과 엇비슷한, 해발 1000m 이상의 도시답게 4계절이 뚜렷하고 맑은 공기를 지낸 캘거리를 좋아한다. 자연을 경외하되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들이 만들어낸 청빈한 도시, 그래서 나는 사반세기가 넘도록 떠나질 못한다. 그런 연유가 올해도 세계 4위의 행복한 도시로 자리매김한 것일까?

고요한 가을밤, 맑고 푸른 가을 밤하늘, 별빛을 친구 삼아 창공을 노니는 초승달의 새침스러운 자세가 마치 보름달처럼 풍성하다.  오늘따라 그지없이 정겹고 따사롭다. 그 사이로 별똥별 하나가 휙 선을 긋는다. 맑게 갠 가을 밤하늘은 쳐다만 보아도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고 치유되는 밤이다. 연륜을 더할수록, 나의 영원한 고향은 하늘이라는 고백을 하는 충동이 이는 것도, 가을밤 하늘이 주시는 지혜다. 별빛을 타고 올라 별 속에서 잠들리라는, 아름다운 삶의 너머 미학이 남아있어 마음 든든하다. 삶의 위기가 닥쳐오고, 팔월 내내  담낭 수술과 요양을 하느라 힘들어할 때마다, 나는 기도를 한다.

"나에 대한 삶의 욕심은 없습니다. 나를 위한 소망과 부(富)도 더는 바라지 않습니다. 더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살아서 해야 될 이유들이 많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고도 힘든 삶을 계속하려 합니다."  짧지만 애절한 기도의 횟수가 느는 것도 노년의 가을이다.

어영부영 세월만 축낸 것 같아도,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고 회생한 깨달음의 축복이 있기에 감사의 뜨거움이 이는 것이다.

이 노년의 가을 아침에, 보이는 작은 것들이 의미를 더해가며 더없이 풍성해진다.

디오게네스 독백처럼 맑은 하늘로 부터 창가에 내리는 한줄기 가을 햇살이면 족하다. 그 햇살이 가슴속 깊은 곳을 데워서 지혜의 증기를 피워내고 싶다. 슬기롭게 버리고 내려놓는 삶의 지혜 외에 또 다른 복을 구한다면 그런 건 나에게 사치일 뿐이다. 자발적 가난한 마음에서 출발한 나를,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리라.

존경하는 지인 한 분이 문병차 불쑥 방문하고는 수국(水菊) 화분을 두고 갔다.

플라스틱 화분 넓이가 손바닥만 한 것이, 깻잎 모양의 큼직한 잎사귀 위에 주먹보다 큰 꽃더미를, 대여섯 개 피워내고 있어 조금만 건드려도 쓰러질 것만 같다. 가격을 보니 30불의 비싼 가격이라, 걸맞지 않게 화분이 작지만 무심코 넘겼다. 앞마당 정원에서 키우는 10여 년이 훨씬 지난 달리아가 해마다 큼직한 꽃잎을 피우고는, 일주일 어간에 꽃잎이 떨어진다. 주위가 지저분 해지는 모습에 시큰둥 해져서, 마지막 꽃이 지고 나면, 키가 큰 잎들을 밑동까지 잘라내곤 한다. 수국도 그러려니 창가에 놓아두었다. 화분이 작아 매일 물주기를 했다.

하루는 물을 주는 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이튿날 새벽 거실로 내려가니 수백 개의 작은 꽃잎들이 종잇장 구겨지듯 바싹 오므라들고 있었다. 꽃가루가 없으니 잎들이 서로 바짝 붙어서 손으로 펼 수도 없다. 그토록 붉은색의 아름다움이 하루 어간에 흉물로 변했다. 버릴까 망설이다 물을 주었다. 하루가 지나 수국이 궁금해졌다. 이게 웬일인가, 언제 그랬냐는 듯 더 싱싱한 모습으로 조무래기 꽃잎들이 방실 거리며 더 윤기가 난다. 수국은 매일 한 컵의 자연수 물, 한줄기 햇빛이면 하루가 족하다. 알칼리성 화분이 1달이 지나자 산성토양으로 변하는가 보다. 산성토양에서는 푸른색으로 꽃잎 색갈이 변한다고 했다. 척박하면 척박한 대로, 분수대로 사는 것이 멋있는 삶일 것이다. 큰 화분에서 키워지면 상품가치가 더해질 것 같으나  몇 며칠에 한 번씩 물을 주면 꽃이 오래 못 가고 시든다는 사실을 가을에야 깨달았다. 이전에 보이지 않은 사소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보잘것없고 안쓰러운 것들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 이민 사회 각종 활동에 시간을 쪼개서 참석하기 시작한다. 폐쇄된 나 자신이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자, 주변의 것들에 연민의 정을 느끼기 시작하고 가슴 아파하고 사랑을 나눈다.

인생이 슴슴해진다.  

인생이 무덤덤해지는 것 같으나 침묵 속에서 발견되는 무아(無我)의 심층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한다. 아내가 끓여준 콩나물 뭇국, 밥 한 공기가 푸짐하니 일용할 양식이면 족하다.

노년의 가을,

나는 이 계절에 내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봐야만 한다.

기억력은 가물가물해지지만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고요한 지혜, 고통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내고 창조하는 내면의 능력, 너무 좋은 지인(知人) ​들,​ 아직도 내가 사랑하는 직업과 일을 할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축복을 일일이헤아려 보아야만 한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고요한 가을밤에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뜨거운 감사의 기도를 해야만 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이 가을에 독서로 단련해서 긴긴 겨울을 무사히 나고자 한다.

심층(深層)의 빛을 스승 삼아 다시 한번 봄의 새싹을 틔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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