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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발, 무덤까지의 비밀

글쓴이 : Reporter 날짜 : 2018-09-02 (일) 11:10 조회 : 16020
글주소 : http://www.cakonet.com/b/column-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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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인 협회)

심한 구토와 복통으로 로키 뷰 병원에 입원했다.
생전에 그렇게 심한 복부 통증은 처음 경험을 한 것이라, 전날 밤 생선회를 잘못 든 탓인가 지레짐작을 하고 응급실을 찾았는데 이틀간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각종 검사를 한다. 담낭 관이 돌과 찌꺼기로 막혔다고 했다. 이튿날 수술을 하기 위해 앰뷸런스로 피터 로히드 병원으로 후송이 됐다. 응급수술이 밀려서 후송이 된 것이다. 전날부터 한국인 간호사 한 명이 나의 병실을 부지런히 들락거리는 것하며, 오늘따라 1명이 증원된, 정복을 한 건장한 청년 3명의 후송 대원들이 병실에 도착한 것으로 미루어,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후송 대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복부의 가스가 찬 것을 핑계로 걸어가겠다고 한참을 고집했다. 수액을 받쳐 든 대원과 뒤따르는 이송 침대,  2명의 호위를 받으며 나는 긴 복도를, 마치 훈련병처럼 팔을 흔들며 의기양양하게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서 걸었다. 통증은 심했지만 오랜만의 상쾌한 기분이다. 1층에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 침대도 스스로 올라가서 누웠다. 그제서야 대원들이 나를 보고 폭소를 터뜨린다. 담석 제거 수술을 한 그날, 병실로 돌아왔다. 여전히 수액에 의존한 체 나흘을 금식하고 다시 쓸개 제거 수술을 했다. 그리고 이틀 후에 퇴원을 했다. 퇴원 마지막 날의 수프와 주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수액에 의존했으니, 기진맥진이다. 일주일 어간에 두 번의 전신마취,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진행되는 각종 검사, 마약성 진통제에 몸이 절어, 며칠 밤을 환각 속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간의 고통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8월 12일, 강혜정 소프라노 성악가의 캘거리 공연에 '캘거리 한인 합창단'이 출연할 예정이어서, 8월 7일(화)) 총 연습이 공지되었다. 그동안 입원 사실을 함구했던 터라, 합창단 카톡 방에 글을 남겼다.  '쓸개 제거 수술 후 8월 6일 퇴원, 8월 12일 리허설 시간에 맞추어 참석하겠습니다'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누워서 쉬는 한 주일 내내 복부 통증이 가실 줄을 모른다, 

처방을 내준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하며 나흘을 버티다 독성이 너무 강한 것 같아 중단하고 고통을 참아내기로 했다. 제한하는 음식이 왜 그리 많은 지, 일주일 만에 5kg이 줄었다. 이민 생활 25년 만에 처음으로, 그렇게도 소원하던 70kg 아래로 줄어든 것이다. 오직 밥공기의 양을 절반으로 줄였을 뿐,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는데, 다이어트의 쉬운 방법을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았다는 즐거움이 통증과 상쇄를 한다. 고통 속에서 발견하는 조그만 기쁨이 오늘 아침을 상쾌하게 만든다.

잊을 수 없는 사연들 때문에 내일 합창단 공연에 꼭 참석하리라, 다짐을 하는 순간이다.
지난 9년 동안 궂은 날씨를 마다않고, 연습 시간에 맞추느라 과속 주행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연습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일 먼저 달려 나와 주차장으로 냅다 뛴다. 10시에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다.

김하나 지휘자는 셋째 아이 출산을 곧 앞두고도 연습을 강행했다. 연습 중 "아이고, 곧 아이를 낳을 것 같아요." 중얼거리더니 몇 며칠 후에 출산을 했다. 박현미 반주자는 반주하느라 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르는 것을 참아내며 지도를 했다. 몇 년 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전곡을  캘거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합창단과 함께 잭 싱어 홀에서 협연을 했다. 곡이 빠르고 독일어가 생소해서 수십 번을 반복하며 연습을 해야 했는데 파트별로 따로 연습할 때면, 나는 피아노 옆에 바짝 앉아서 박현미 반주자의 퉁퉁 부은 손가락을 바라보곤 했다. "손가락이 너무 아파요" 가슴이 아팠다. 그 수고 덕분에 전곡을 거의 외워서 출연을 했다. 모든 단원이 고통을 감내하며 전력투구했던 모습들이 불현듯 떠오르는데 꼭 가야만 한다.

아내가 밤늦게 가게에서 돌아와 전화를 받거니 주거니 요란하다.
합창 공연 합류는 어림 반푼도 없다는 듯, 거실 소파에 누워있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큰 소리로 떠들어 댄다. 며느리도 끼어들었다. 전화로 아내와 맞장구를 치는 것 같더니 전화기를 건네준다. "아버님 식사시간 외에는 꼼짝없이 누워서 주무셔야 해요. 그래야 수술 부위가 빨리 아물지요"  엑스레이, 울트라 사운드, 피검사, 패밀리 닥터와 수술 담당 전문의 면담 등 줄줄이 예약된 일정 계획을 반복 설명하는데 속사포를 쏘아대듯 쉼이 없다. 며느리는 매일 가게로 나가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돕는다, 피자 도우를 만들고 배달도 하는 것이 안쓰러워 "알았다" 목이 메어 짧은 대답 외에는 달리할 말이 없었다.

밤 2시가 넘어서야 아내는 잠이 들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숨을 죽이며 살금살금 차고로 갔다. 차 속에 늘 보관하던 합창단 바인더와 구두를 꺼냈다. 아내가 내 차를 몰고 일터로 나가기 때문에 미리 꺼내어 실내 구석진 곳에 숨겨 놓았다. 구두를 신는 일은 경조사 외에는 좀처럼 드물고, 늘 까만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언젠가 공연이 있어 일하다 공연장에 가까스로 도착하니, 공연 양복은 챙겼는데  합창곡 바인더와 구두를 미쳐 준비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자동차에 늘 가지고 다닌다. 통증에 대비해 마약성진통제 한 알도 준비했다. 나는 아침에 시침을  뚝 뗀 채 누워 있었다. 점심이 지나고 아내가 차를 몰고 나가자  빠른 동작으로 목욕을 끝내고 연주복을 꺼내 두었다.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나를 공연장에 좀 데려다주지"  병실로 병문안을 온 것을 핑계로 전화를 했다. "누구 혼나는 꼴 보려고, 누나한테 나 맞아 죽습니다" 어떤 부탁도 마다않던 친구가 단호히 거절한다. 어라, 철저히 봉쇄를 당했구나. 택시를 불러야겠다. 아니, 올 때의 번거로움 때문에 그것도 힘들겠군. 비장한 마음으로 다시 전화를 한다.

20여 년간 누님, 언니 하며 절친하게 지내던 두 내외가 합창단원이다. 부탁을 하자 흔쾌히 응했다. "올 때 아무것도 사 오지 말고" "알았습니다" 서로 미주알고주알 터놓고 이야기하는 터라, 증거를 남기면 안 된다는 뜻을 얼른 알아차린 것이다. 도착하려면 두 시간이 남았다. 발성연습으로 목을 부드럽게 하는가 하면, 합창곡을 반복해서 부르며 완전히 외웠다. 중단했던 마약성 진통제를 미리 먹어 두었으니 온몸이 가볍다. 식은땀이 흐를 것에 대비해 오랜만에 손수건도 챙겼다.

띵동, 문의 벨이 울린다. 집으로 들어올 생각은 않은 채 독촉을 한다. 
두 부부는 기어이 문턱도 밟지 못하고 나는 엉거주춤 차에 올랐다. 틈만 나면 농담과 수다를 좋아하던 중년의 부부가 침묵으로 일관하니 분위기가 어색하다 " (오늘 이 사실을) 우리 셋이서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합니다." 나는 흠칫 놀랐다. 그렇게까지 심각한 일인가. 400여 명의 청중이 몰려든 연주회가 성황리에 끝나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아랫배에서부터 통증이 시작된다. 돌아오는 차중에서  연신 물만 들이 키는데, 이번에는 두 내외가 합창을 하듯 속삭였다.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돼" "걱정하지 말아" 다짐하듯 약속했다. 집 앞에다 내려다 주더니 냅다 훌쩍 떠난다.

모든 흔적을 말끔히 치웠다. 007작전처럼 완벽하게 오늘의 임무 수행을 끝냈다. 
치밀한 봉쇄망을 뚫고 해내다니...... 쾌감 절반, 통증 절반의 기운을 품은 채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늘 합창단 공연에 참석했어요?"  잠결에 아내의 소리가 들린다. "응"  연신 전화기를 돌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도 전화하느라 분주하지만, 당사자 부부는 전화를 받을 리가 만무하다. 내가 침묵으로 일관하니 더 이상 물어보지 않는다. 변명도 도움이 안 된다. 더 이상 요란을 피우면 한마디 하리라. 생각을 바꾼다. 모두들 나 때문에 고생을 하는데 이때는 침묵이 상수다.

아뿔싸 !. 
디스 타임 신문사가 합창단원에게 제공한 까만 상표 '디스 타임'의 패트 물병이 주방 구석의 빈 패트 물병들에 섞여 있다니. 그놈이 유독 철부지처럼 싱그렁벙그렁거린다. 유난히 상표가 예뻐서 집에 올 때까지 남은 물을 다 마셨는데 화근이 됐다. 그 사건 이후 일체 말이 없었다. 며칠 후, 아내는 두 부부가 평소에 좋아하는 물김치 한 병을 담궈 들고는 미장원으로 향했다. 내가 이발을 마칠 때까지 누구도 그날의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부근의 카페에서 기다리는 동안, 아내의 머리 손질이 끝나고 차에 오르니 "다음에 꼭 좀 초대해 줘요, 시간이 많으니까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연신 싱글벙글이다.

'비록 무덤까지의 약속'은 나의 사소한 실수로 불발이 되었지만, 위대한 침묵과 열정으로 빚어낸 노년의 아름다운 사건이다.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무덤에 갈 때까지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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