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전염병의 두려움에 시달리다 어두움이 짙어지면 늙음의 두려운 시간들이 시작된다.
쇠약의 언어들이 부활하고 늙은 관절의 주책없는 칼질이 시작된다. 통증의 나팔은 괴성의 신음소리, 혈관마저 늙어가는 소리, 우울한 것들로 가득찬 지친 밤의 연주회는 이렇게 시작된다. 서글픈 밤이다. 이민 삶의 훈장들이다.
오늘따라 보름달 마저도 뿌연 빛으로 촉촉하게 달무리 인다. 애처로운 모습이다. 바람결에 수런거리는 가을밤의 소리들과 낮의 이야기들이 범벅이 된다.
낮과 밤의 이야기는 다르다. 밤의 한숨소리는 낮의 성스러운 생각들과 융합하며 지평선으로 끌고가는 밤의 슬픈 애가는 막이 오른다.
그래도 깊어가는 어두움은 눌린 사람들의 눈을 감기며 영혼을 달래준다. 곤한 안식의 밤이지만 달콤할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도데체 무슨 생각에 골몰하는지 몽롱한 순간이다.
현존재의 두려운 순간들이 울타리의 띠처럼 몸을 감는다. 나는 요즈음 하이데거의 존재를 넘어 비존재의 <거기>의 대목 해설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다.
슬픈 달무리 모습처럼.
가게를 출발해서 10분이면 링 로드 고속도로를 벗어나고 에버그린 블루버드 다리위에 이른다. 왼쪽으로 틀면 3 분이면 집에 도착할 것을. 오른쪽 언덕으로 차를 돌렸다. 아주 오래간만의 밤의 용기가 나를 깨우고 있다.
코로나 역병의 두려움 보다 더 심각한 것들을 덕지덕지 머리에 인체로, 덜컹거리는 자갈길 비포장 원주민 도로를 따라 유유적적 달빛따라 가는데 낙타의 별이 멈춘다.
지평선 유채밭이 달빛에 환히 어린다.
나의 지평선은 선명하게 보이는데 유채밭은 언제나 아득한 지평선, 끝이없다.
추수의 환희는 어디에 숨었는가. 물결 타는 곱고 맑은 무도회 노란 여인들이 간데 없다. 시름시름 앓고있는 중이다. 유채밭은 저주를 받고있다. 여름 내내 산불연기 늪에서 허우적 거리느라 성한곳이 없다. 누룩칙칙한 자태, 말라 찥어진 풍광들, 변방 아프카니스탄 여인의 입술 터진 핏자국처럼 초췌한 모습이다.
매연은 풀잎의 밤 이슬 마저 낚아채는 매정한 진드기같다.
산등성이 유채밭도, 아프칸여인들도, 나도 동병상린 중이다.
어느새 맑게 갠 창공에 별똥은 길게 난을 친다. 로키산맥 상공위를 나르는 밤의 제트기류는 여전히 빠르게 구름과 매연을 걷어낸다.
달은 쟁반처럼 밝게 빛나고 별들은 영롱하다.
세상은 갈수록 시름거리는데 우주의 창조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길섶에 우뚝선 노목마저도 힘에 겨운듯 우수수 떠는 밤, 차의 보턴들을 누른다. 스르르 지붕을 밀어내며 하늘이 열린다. 의자는 미끄러지듯 침대를 뚝딱만든다.
여인의 핸드백같은 작은 가방에서 크롬북을 펼친다.
지나번 읽다 덮은 세네카가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첫번째 편지, 시간의 선용에 관한 글이 창에 바로 뜬다.
첨단 문명의 이기에 포위된 존재의 시간안에서 생성과 소멸의 순간이 멈춘다. 고요한 고독의 밤이 찾아온다.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죽어 가는 것,
어제는 내가 산 날이 아니라 죽음이 소유한 시간을 통과해서 간신히 빠져나온 것. 그러나 침묵의 이 순간의 소중한 시간을 성스럽게 통과한다.
세네카를 만나며 속삭인다. 세네카는 나의 무거운 머리를, 관절을 깨끗이 치유하고 있다. 내면을 청소하고 마음의 근육을 붙여준다.
구입한 전자책 500 여권 중에 요즈음은 스토아 학자들의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 예수이전의 세계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아리스토테레스를 만나고 에피크로스의 호케포스정원에서 죽음의 강의를 듣는다.
대가들을 만난 후, 예수를 다시 만나면 참사랑의 의미와 관용의 깊은 뜻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거기에는 한시대의 지평선을 함께 걸어간 흔적들이 오롯하게 녹아있기 문이다. 고전은 늘 우리에게 사랑과 관용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고전을 읽는 순간은 은밀하게 나를 출애굽시키는 시간 나의 창문을 열고 새로운 것을 만나는 순간이다.
고전을 읽는 다는 것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배우는 것.
이순간 고대 로마의 별들은 지금 창공의 별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언어들을 창조하고있다.
그 언어에 화답하는 이 순간, 나의 삶은 풍부하고 성스럽게 훈련된다. 맑게 치유된다. 선한 마음을 활짝 피우는 밤나팔꽃처럼.
두려움을 넘어서며 공허한 결핍이 메워진다. 죽음이 두렵지않고 친근하다.
소르르 깊은 잠에 빠져든다. 아내가 깨우는 전화벨 소리에 놀라 일상의 존재 세계로 돌아간다.
잠자리에 들기전 지난달 캘거리한인회에에서 제작해준 사진작가의 나의 영정사진을 자랑스럽게 쓰다듬는다.
치과위생사인 며느와 함께 치과 치료를 끝내고 돌아오는 날, 차중에서 “언제 죽어도 두렵지않아, 내일 죽어도 나는 기쁨으로 맞을 준비가 되어있어” 평소에 이상한 말을 하면 펄펄 뛰던 며느리가 잠잠하다. 서점가게 딸인 며느리가 간신히 말을 건넨다.
“아버님 하이데거의 책들은 너무 어려우니 노년에는 대충 읽어두세요”
추석을 일주일 남겨둔 월요일 밤, 코비드 기간 동안에는 언제나 전화로 비대면 진료받고 이메일로 검사 의뢰용지, 처방을 받곤했서 며느리가 끼어들 틈이 없었는데, 우편물로 우송된 피검사의뢰서에는 검사항목이 빼곡하다. 그리고 내일 예약시간에는 며느리가 굳이 함께 동행하겠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예약이 되어있고 전례없는 검사의뢰서를 받았다. 며느리의 재주가 신통하다.
나의 죽음 준비에 관한 이야기에 많이 놀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