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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향유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21-10-27 (수) 09:04 조회 : 14748
글주소 : http://www.cakonet.com/b/column-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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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享有)
고달프고 불안한 굴레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자유를 누리는 것, 디아스포라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소망이다.

고난과 시련의 진흑속에서 피어나는 향유의 꿈 이제껏 살아서 존재하는 것도 감사한 일인데 더 무엇을 바란다는 것은 염치없는 욕망일 것이다.

6.25 전쟁 중 1951년 1.4후퇴 때 함경남도 원산에 살던 우리 가족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집에 남겨둔 채 전쟁 소식을 들으려고 부둣가로 나왔다가 미군의 마지막 철수 군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많은 원산 시민들이 지녔던 물건을 모두 버린채 준비도 없이 엉겁결 배에 탔다.
우리 가족도 어머니가 가슴에 품은 성경책 한 권을 의지하며 승선을 했다.  
다섯살 어린 시절, 쾅 하는 포탄 터지는 소리와 부산의 방공호 속에서 거죽을 깔고 밤잠을 자던 흐릿한 기억뿐이다.

전쟁 기록을 읽으니 미군이 원산에 남겨둔 군수품과 화약 등을 마지막으로 처리하기 위해 원산 시내를 불바다로 만들고 출발하려는 시점이었다고 한다.

이민생활 15여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예순을 넘기고 노인연금을 수령할 즈음, 이국 땅에서 남은 여생을 어떻게 즐기며 살 것인가 하는 심각한 번민의 생각에 골몰한 때가 있었다. 
과로로 온몸은 만신창이었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우울증이 겹쳐 몇 해를 고생하던 시절이었다.

주위의 가까운 분들로 부터 이제 그만  은퇴하는 것이 촣을 것 같다는 조언이 있었는가 하면, 나의 가정 사정에 밝은 어떤 지인은 쉬면서 지내보면 외로움과 고통이 더 심할 때가 많으니, 절대 사업을 그만 두면 안된다고 몇 번 씩이나 찾아와서 당부하는 분들도 있었다. 
20여년 전 쯤인가, 어느 은퇴한 교역자 댁에서 유명한 한의사를 초청하고 무료로 건강진단을 하고 치료해 주는 자선행사가 있었다. 
나를 진찰한 한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지금의 건강 상태로는 몇 년을 살기 힘들다고 했다.

언젠가는 내가 헌신적으로 보살폈던 유학생의 한의사 아버지가 나의 건강  소식을 듣고는 공항에서 바로 가게로 달려왔다. 진맥을 하고는 여러곳에 침을 놓았다. 주의 사항이 요란했다. 이튿날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공항에서 또다시 많은 주위와 당부를 한 기억이 새롭다.

그 이후로 나는 언젠가는 죽을 운명, 이웃에게 봉사하다가 죽으리라는 결심을 하게되었다. 
오후 4시에 가게 문을 열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6개월 통역과정을 수료하고, 의료, 법원’ 학교 가정문제 등 가리지않고 무료 봉사활동을 했다. 
청소년 교도소, 지역사회 불우 어린이들에게는 몇 차례 피자 공급도 하는 등 지금까지 600여 회쯤 봉사활동을 했다.

그 공적으로 교민 400여명의 추천을 받아 과분하게 많은 봉사상을 수상했다. 
토론토 한인 봉사상, 캘거리 라이온스 봉사상, 캐년메도우 커뮤니티 봉사상, 교도소 한인단체 등 송구스러울 정도로 많은 상을 수상했다.

이웃의, 타자에 대한 사랑의 봉사가 잔잔한 나의 기쁨으로 되돌아오면서 병세는 호전되고 안정을 되찾았다.

한 곳에서 가게를 운영한 지 27년의 세월이 지났다. 
지난 COVID-19 역병의 2년여 생활동안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왔다. 낮선 두려움의 세상을 만나며 혈압이 상승하고 질병이 다시 뒤따른다. 응급실신세를 여러번 지기도 하는 등, 끊임없는 진료의뢰서에 시달렸다. 단절의 시간이 늘어나자 독서에 열중했다. 
그동안 구매한 500여권의 e-book을 열심히 읽었다.

가을에 접어 들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요즈음은 알버타도 완벽한 의료 전산망이 구축돼 각 분야 전문의 진찰 결과와 의료검사가 훼미리  닥터에게 즉시 종합된다. 25년 동안 나를 돌봐준 훼미리 닥터로부터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는 최고의 건강 관리 칭찬을 받았다.

굴곡의 험한 인생길을 반추하며 이 깊어 가는 가을, 내가 꿈꾸는 향유룰 찾아가는 깊은 사유에 잠긴다.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기위해 밑줄을 그었던 전자책들을 더듬어간다.
화이트헤드의 자기만의 향유, 기원 후 3세기 철학자 플로티누스의 존재 철학에서 관조(觀照)하는 삶을 깨닫는다. 프랑스 20세기 철학자 둘레즈가 말년에 자가향유가 무엇일까 고민하는 대목에서 한참을 머문다.

자기를 즐기는 방법은 부단한 타자의 접속을 통한 사랑과 연민을 느끼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나님, 인간과 자연의 사물을 접촉하며 관조를 통해서 얻어지는 잔잔한 기쁨들, 거기에서 향유의 싻이 트고 꽃을 피운다.

돌, 새, 나무, 모든 사물은 마치 서로가 거울을 비추듯 관조한다 
그속에서 은밀히 속삭이는 이야기들, 그것은 결핍과 고통의 환경 속에서 보이기 시작하면 정신과 영혼이 맑아지며 풍성해진다.

진정한 자기향유는 이기적상태를 벗어나서 초연한 상태로 내 맡기면 서로의 기운을 주고받는다. 타자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관조하는 기쁨을 어찌 돈의 부유함과 비교할 수 있을까.

타자들과 꾸준한 접속 연결없이는 관조의 기쁨이 없다.
존재에 감사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잔잔한 기쁨속에서 미래의 불안과 쾌락의 욕망이 사라진다. 주위의 세상이 신비로 다가오며 성스럽고 선한 세계가 보인다.

때로는 이 모든 것들의 단절을 통해서 고요한 고독의 명상에 잠길때, 늘 깨끗하고 넉넉한 마음의 카타르시스가 일어난다. 아름답고 황홀한 세상이 다가오며 펼쳐질 때 아!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솟구친다.

관조의 습관이 베어들면, 바쁜 일상, 힘들게 일하는 순간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화나고 힘들고 우울한 것들을 밀어낸다.

밤하늘의 별과 달, 가을바람 소리, 
갈매기가 가게 뒷문에서 배고프다고 서럽게 울며 보채는 소리, 
로키산맥의 화려한 저녁놀, 만나는 사람마다 선함이 넘치는 모습들, 그 속에서 들리는 성스러운 하나님의 음성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내가 꿈꾸는 향유는 물질의 부유함보다도 결핍의 일상에서 관조하며 타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잔잔한 행복들을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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