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에는 부모님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 액자가 하나가 걸려있다.
이민을 오기 몇 해 전쯤, 강원도 기도원에서 생활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춘천 시내 제법 큰 사진관에서 내외분이 함께 초상화를 찍었다.
아담한 크기의 액자에 상반신 컬러 사진으로 사진사에게 특별히 부탁해 영정 사진 형식으로 분리해서 편집이 가능하도록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다정다감한 모습은커녕, 선하시고 성스러움이 베인 근엄한 얼굴로 훈계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한평생 고난의 술회를 고스란히 용안에 담아내듯 무언의 유언, 형안의 신비로운 모습이시다.
삶이 고단할 때면 바라만 보아도 큰 위로가 되기 때문에 나에게 마지막 베풀어 주시는 유일한 축복의 선물 같은 것이어서 각별하다.
60대 정정한 부모님 근황이어서 늘 곁에 계시는 듯 오롯한 모습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가꾸셨는지 하얀 얼굴의 용모는 도무지 산골 촌로 답지 않다.
한복과 양복으로 단장한 고운 자태의 소중한 기념사진이다.
이민을 오면서 형제들에게 복사해서 나누어 주었다.
별세하셨을 때마다 편집해서 장례에 사용했으니, 위패 같은 귀한 영정사진이어서 40여 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금년 여름 7월 중순 토요일 오전, 한인회관 강당에서 영정사진을 찍었다.
캘거리 한인회에서 주관한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걸맞은 봉사 행사로 얼른 신청을 했다.
예약한 시간에 맞추어 회관에 도착했다.
한인회 임원인 권 탁 미디어 부장이 스튜디오를 설치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상업용 사진 촬영을 하는 전문 직업 작가에게 영정사진을 의뢰한 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어떤 얼굴 표정이 좋을까.
"이 순간도 늘 정의롭고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기다리는 동안 눈을 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표정을 만들었다.
검은 테두리 액자에 담긴 흑백 영정사진과 이메일로 컬러사진 몇 종류가 배달되었다.
아담하다. 책상 위에 두고는 수시로 바라보며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생각한다.
나의 얼굴을 바라본다. 볼수록 정다워진다. 기도가 절로 나온다.
“늘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이 세상의 삶이 끝나는 날,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한치의 부끄럼이 없도록 곁에서 늘 채찍질하며 나를 인도하소서.
새롭게 삶을 창조할 힘을 주소서.
주님처럼 빛을 발하지 못해도 주님 말씀처럼 내 마음의 천국을 늘 가꾸게 하소서.
매일 죽음의 날을 생각하며 열심히 생활하는 하루가 되도록 인도하소서.”
그런 기도의 힘으로 며느리에게 불쑥 내뱉은 말이 있다.
“나는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있어서 내일 죽는다 해도 기쁨으로 맞을 것이다.”
한국에서 의공학 석사학위를 소지하고 캐나다 치과 위생사 자격증을 취득한 며느리가 요즈음 치과에 갈 때는 동행한다. 치과의사는 잇몸 상태가 매우 좋지 않으니 발치하고 임플란트 심기를 권유하는데 일 년 이상 버티었다.
진료를 끝내고 차중에서 나의 심경을 당당히 밝혔는데 며느리가 많이 놀란 모양이다.
며칠 후 25년 동안 나를 지켜준 패밀리 Dr Searles에게 나도 모르게 예약이 되어있었다.
며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1년이 넘도록 비대면으로 전화, 이메일로 진료상담을 해 온 터라 당황했다.
집에서 준비한 혈압계로 혈압을 보고하면 피검사, 약 처방, 전문의 진료의뢰서를 받곤 하는데 익숙해져서, 그동안 아무 불편이 없었고 나의 건강 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의사가 여럿인 진료 대기실에는 언제나 환지들로 북새통이었다.
이날은 대기실에 며느리와 나, 두 명뿐이다.
의사를 만나자마자 “요즈음 시아버지 운전이 이상해지고 걸음걸이도 어눌해집니다…..”
따발총 쏘듯 나의 이상한 증세를 설명한다. 예전 같으면 10분 대면으로 끝날 것을, 30분이 넘도록 자각증상 체크를 세밀하게 진찰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기 피검사 예약 일정이 앞 당겨지고, 청력 검사 전문의 진료일자가 정해졌다.
6개월마다 진료받던 치과 치아 스케일링이 당분간 3개월마다 하게 됐다.
10여 년을 미루어 오던 백내장 수술이 기어이 내년 1월 중순으로 확정됐다.
패밀리 닥터의 진료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운전하면서 며느리와 대화에 집중하다 보니 잠시 방향을 잊어서 엉뚱한 길로 들어섰을 것이고, 어눌하고 느린 걸음은 노화 현상일 것이리라.
요즈음 가게 일이 끝나는 밤, 아내는 먼저 퇴근하고 나는 인적이 드문 상가 주위를 매우 빠른 걸음으로 뛰어가듯 걷는다.
마치 북한 인민군들이 행진하는 것처럼, 보폭은 넓게 팔을 쭉 뻗고 힘차게 흔든다.
복근에 힘을 주고 어깨는 쫙 펴고 엉덩이에 힘을 주고 걷는다.
노년에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삶을 경건하고 성스럽게 만들어 가는 것,
역병의 두려움을 건너뛰며 담대하게 아슬아슬한 삶을 즐기는 것, 욕심과 욕망이 없는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것이다.
9월 마지막 주간 월요일 오후에 팔순의 윤병옥 합기도 관장의 집에 놀러 갔다.
가을이 깊어가는 데도 마당과 뒷뜰에는 온갖 기묘한 화초, 채소 열매들로 가득하다.
마치 천국 문에 들어선 것 같다.
정각 윤병옥관장은 매일 일기를 쓴다.
깨알 같은 달필로 삶을 기록한 일기장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혀가며 죽음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담소와 향긋한 커피향, 가을 정취에 취해 처음으로 미디엄 사이즈 커피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노년에 죽음에 관한 삶의 이야기는 삶의 활력소, 위드 코미드(with covid)처럼 친근해질수록 욕망이 없는 새로운 삶이 창조되는 것을 경험한다.
15년 전의 일이다.
2006년 12월 어느 추운 겨울날, 정각 관장이 가게를 불쑥 방문했다.
한국의 유명 풍수지리가 가 시립묘지 명당자리를 발견했으니 서둘러 묏자리를 사두자고 했다.
즉시 같이가서 각자 2000불을 지불하고 나란히 구입했다.
영정사진 덕분에 일과가 담대해진다. 나에게 욕심이 없는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다.
compassion, 사랑으로 함께 극복하며 삶을 나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