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들어서도 무더운 날씨의 기승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 전례 없는 폭염과 가뭄이 달포가 넘도록 계속 중이다. 산불이 계속 일더니 아직도 매연이 짙은 안개처럼 밀려온다. 캐나다의 산불 재해는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는 자연재해라지만, 금년에는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가을 산불은 낙엽을 태우는 것처럼 구수한 냄새의 추억으로 마음을 달래기도 하지만, 한여름의 산불 연기는 눈과 코끝에 스며들며 연신 매운 고통만 더해간다. 산천초목 모든 생물이 헉헉대고, 절정의 초록빛 잎들도 매연에 물든 듯 푸른 잎사귀마다 독기를 품은 것처럼 검푸르다.
더위에 지쳐 가게 뒷마당 포플러 나무 그늘 아래 가을의 깊은 생각에 잠긴다. 노란 나뭇잎 하나가 빙그르 돌며 뚝 하고 발밑에 내려앉는다. 놀란 토끼처럼 휘둥그레 주위를 살펴보아도 사방엔 아직도 푸르름 뿐이다. 두리번거리며 머뭇머뭇하는데 갈매기 한 마리가 내 앞을 휙 지나간다. 나무 우듬지 쪽으로 유유히 날더니 다시 지붕 위 제자리로 가서 앉는다.
가을이 오고 있다. 가을의 전령사. 가게 뒷마당의 포플러 나무를 사랑한다. 수령 70년이 넘은 포플러 나무의 지혜로움을 이미 4반세기를 곁에서 지켜보며 배워서 아는 터, 깊은 정이 들었다. 신령한 기운이 흐르고 있음을 알기에 어머니 같은 나무처럼 의지한다.
늦은 밤에, 계절과 해가 바뀌며 일이 힘들어질 때, 때로는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남몰래 두 아름 나무를 꼭 감고서 달빛 아래 얼굴을 비비고 빙빙 돌던 추억의 나무, 겨울에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속 같고, 무더위에는 시원한 바람에 젓어 서늘하던 코르크 껍질마저도 이제는 깊은 주름을 깊게 만들며 늙어간다. 귀를 꼭 대면 저 멀리 어머니 소리들을 전해주던 나무들이다.
우듬지 주위에는 벌써 한무리 낙엽을 만들며 나의 깊은 생각을 깨우는 것이다. 100년의 수명을 넘지 못한다는 이탈리아산 교배 잡종 포플러 나무는 이미 서서히 늙어가며 죽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금년에 잎을 피우지 못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매달린 채 즐비하게 늘어간다. 철조망에 기대어 나란히 10여 그루의 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자라던 포플러 나무가 지금은 6그루 남았다. 4년 전 상가 몰에 두 그루 나무에 바짝 붙여 쓰레기 오물 처리장 4개를 만들었다. 두 포플러 나무가 비실비실거린다. 뿌리가 옆으로 뻗으며 철조망과 나란히 자라던 두 그루 나무가 거의 일정한 간격으로 새싹을 돋게 하더니 금년에 2m가 넘게 자랐다. 그 나무의 뿌리에서 자손을 만들고 서서히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놀랍고 신비한 일이다.
우리 집 철새 로빈도 금년에는 매연 때문에 번식을 포기하고 종적을 감춘지 보름이 넘었다. 다섯 해를 오가던 늙은 로빈이 올해는 6월이 다 가도록 짝짓기에 실패했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며 모색이 사방을 에워싸고 어둑해질 무렵, 낯익은 목소리가 나의 지붕 위에서 애달프게 노래를 부른다. 밤늦도록 쩌렁쩌렁 조용한 마을의 적막을 깨워도 젊은 것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너무 매정하다. 작년만 해도 수컷은 해마다 둥지를 보수하고 이틀 정도 구애의 노래를 부르면 짝짓기가 이루어지고 잔디밭과 과일나무를 오가며 다정하게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나를 시샘질하던 요란한 젊은 시절이 있었다. 어느새 암컷이 둥지를 틀고 들어앉으면 수컷은 뒷마당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먹이를 날라주고, 새끼를 낳으면 지렁이를 부지런히 잡아다 주던 아름다운 시절들이 있었는데 체념한 듯 둥지를 떠났다. 정든 로빈새가 산란을 포기하고 떠난 자리를 청소하며 아픈 마음을 달랜다.
역병의 이 가을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심연이 다시 묻고 있다. 역병의 한 해를 시작하는 일출의 순간,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자아가 질문을 했다. “이웃을, 타자를 사랑하겠습니다” 결혼식에서 서약을 하듯 힘차게 대답을 했다.나의 가게가 문을 닫을 무렵, 칼을 주머니에 품은 채 배고픔에 못 견뎌 들어왔던, 암 치료 중이어서 머리가 다 빠진 여자에게 정중하게 다음에 다시 오라고 양해를 구했다. 강도인 줄은 미쳐 몰랐다. 여자 강도는 옆 가게 여종업원에게 칼을 들이대고 돈을 요구했다. 그 이튿날 이야기를 듣고 가슴으로 회개했다. “그분은 주님이셨습니다’ 그 여자는 우리 가게 단골이었다. 해가 바뀌고 금년 2월 머리가 반쯤 자란 그 여인이 돈을 내며 피자를 주문했다. 나는 피자를 더 만들어 주면서 힘들고 굶주릴 때면 다시 오라고 했다.
뒷문을 부수고 현금출납 기계를 훔쳐 간 남자 도둑은 중년의 마약 중독자였다. 그 안에는 10센트, 5센트만이 가득 들어 있었다. 2년이 지난 금년 1월, 동전을 잔뜩 들고 와서는 피자 몇 조각을 주문했다. 그 동전 속에서 발견한 구멍이 뚫린 10센트 동전, 도둑맞은 동전이었다. 언제든지 배가 고프면 다시 오라고 피자 한판을 구워서 주었다. 그는 합장을 하면서 말을 했다. “Are you christian?” 몇 개월 후 신호등 앞에서 구걸하는 그 강도를 만났다. 자동차 창문을 열고 10불 지폐를 손에 꼭 쥐어 주었다. “Thank You, Sam” 이미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얼마 후 가게에 들른 장로 부부에게 울먹거리며 내가 만난 두 예수를 간증하고는 그 오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랑으로 가득 찬 이 대지에 정을 쏟으며 일찍이 풍수가가 권하는 명당자리 묘지도 구입했다. 시신을 연구용으로 기증하고 화장을 하되 절반은 한국 가족 묘지에 절반은 이곳에 묻으라고 유언을 해 두었다. 친구들이 떠나고 사랑하는 이들이 떠나며 남기고 간 영혼의 소리들을 가을바람에 실어가서 겨울 눈 속에 파묻으리라.
가을에는 사랑을 마음껏 펼치고 싶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제는 풍토병으로 바뀌어간다는 두려운 세상 앞에서도 당당히 맞서며 사랑하며 살다가 이별하고 싶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
뒷 뜰에 심은 사과나무, 백장미, 영산홍이 유난히 싱그럽고 포도나무 체리 블루베리 열매는 새들이 마음껏 먹고 난 후 11월에나 수확하려고 한다.
가을의 노래 - 유자효 잃을 줄 알게 하소서/ 가짐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잃음인 것을, 이 가을/ 뚝뚝 지는/ 낙과의 지혜로/ 은혜로이 베푸소서. 떠날 줄 알게 하소서./ 머무름보다/ 더 빛나는 것이/떠남인 것을 이 저문 들녘/ 철새들이 남겨둔/ 보금자리가/약속의 훈장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