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협)
넬리 신(Nelly Shin 47세 한국명 신 윤주 ) 신임 당선자가 연방의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초선 의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당선 신화의 열풍은 캐나다 교민은 물론 정치를 지망하는 전 세계 한인 교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희망과 용기를 안겨 줄 것이다.
넬리의 하원 의원 진출은 김연아 의원이 2008년 12월 총리 지명직으로 상원 의원에 진출하고, 2016 년 조성준(83세 토론토 시의원 8선) 의원이 온타리오 주 의원 선거에서 5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된 후, 그 해 6월 온타리오주 노동 복지부 장관에 입각한 이래로, 캐나다 한인 정치사에 가장 길이 기록될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한인 일간신문 기록에 의하면 1988년 조성준 현 온주 노동복지부 장관이 첫 하원 의원에 출마하여 낙마한 후, 실로 30여 년 만의 쾌거로, 교민들의 소원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1993년 가을, 내가 이민 온 첫해, 처음 출석한 침례교회 주일 예배에서 강단의 대표 기도자가 한국인 2세들의 주류사회 정치 진입을 위한 소원기도 가 얼마나 간절했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해에 캐나다 총선이 있었고, 밴쿠버 지역 하원 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유력한 후보 박광렬 후보가 낙선했다. 그 시절 캘거리 침례교회 담임목사이었던 윤지원 목사가 '선천성 소아 당뇨병에 대한 연구'로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아 노벨 의학상 후보로 추천된 시점이어서 캘거리 교민들이 주류사회 진출에 대한 관심이 유독 높았던 것 같았다,
그동안 몇몇 캐나다 교민들이 하원 의원 진출을 꿈꾸며 도전장을 냈지만 높은 장벽에 막혀 번번이 실패했다.
백광열 씨는 1933, 1997, 2004 년 세 차례나 BC 주에서 자유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번번이 좌절됐다, 2004년 온타리오주 조성준(무소속) 장관, 2008년 BC 주 김연아(보수당) 상원 의원, 2008년 캘거리 김희성(자유당) 후보, 2009년 BC 주 헬렌 장(장희수 녹색당)후보, 2011년 BC 주 이근배(자유당) 후보, 2011년 BC 주 김남윤(녹색당) 2011년 노스웨스트 준주 샌디 리(이승신, 보수당) 2015년 BC 주 그레이스 시어(조은애, 보수당) 후보 등 한인사회 중요한 후보들이 줄줄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2019년은 한인 후보 약진의 해.
연방 총선에 온타리오주 이미숙(NDP) 윤다영(NDP) 이기석(보수당) 메이 제인 남(NDP), BC 주 신철희(보수당) 은 5명의 한인 후보가 낙선했지만 근소한 차이로 2위에 머무른 후보들이 있어 희망을 갖게 됐다.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하원 의원 진출의 벽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젊은 한인 2세들에게 희망의 선물을 안겨줬으니 넬리의 입성은 김연아 상원 의원과 함께 한국 교민 여성 시대의 본격적인 막이 오르며 새 희망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넬리의 당선은 캐나다 한인 교민 정치사에서 30여 년 만에 이룬 쾌거이지만. 당선의 스토리 델링은 곱씹을수록 감동으로 다가온다
지난 10월 21일 치러진 총선에서 BC 주 포트무디-코퀴틀람 선거구 개표 실황은 시종일관 엎치락뒤치락 박빙의 승부, 종반 한동안 300여 표 차이로 벌어지며 뒤져가다 끝판에 1만 6,588표를 얻어 333표 차이로 터줏대감 시의원 보니타 자리를 누르고 극적인 역전승을 얻어냈다. 재검표로 153표로 표차가 줄어들기까지 전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자유당 새라 배다에 이 후보와 초반부터 서로가 30%의 고정 지분을 막판까지 유지하며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캐나다에서 가장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곳이다.
나는 선거 초반에 그 지역구에 사는 오래된 한국 지인 몇 분에게 전화로 지원을 부탁했다.
교회에서 복음성가를 부르며 간증의 기회를 부탁했다. 그의 감동적인 간증과 노래를 들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냉담했다. 그 지역에서 많은 한국 교민이 출마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갑자기 토론토에서 낙하산 공천을 받은 생면부지의 인물을 지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과 함께 전혀 가망이 없다고 했다. 교회도 자유당, 보수당으로 갈라져 쉽게 기회를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넬리는 선교사로, 소외계층의 영적 지도자로, 명 설교가로 알려지고 있다. 한때 고등학교 교사로, 성악가, 복음성가 가수로의 평안한 길을 길을 접고 희망의 정치 지도자로서의 험난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 신화적인 스토리텔링 못지않게 캐나다 교민이면 누구나 인정하는 캐나다 최고의 마당발 여성으로 각인된 신숙희 여사의 일화는 두고두고 우리의 교감이 될 것이다.
무연고 지역, 당의 지원은커녕, 온통 견제와 질시로 기댈 곳이라고는 전무한 황무지에서 넬리의 어머니는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선거구에서 짐을 풀고 뛰었다.
오랫동안 캐나다한인상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봉사를 하고, 현 캐나다한인상위원회 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신숙희 여사의 이번 선거기간 동안 전력투구하는 모습은 어머니로서 헌신적인 보살핌을 넘어 선거 참모로서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내가 첫 번째 신문 칼럼 원고를 카톡으로 보내 주며 검토를 부탁 했다. 넬리와 신 이사장은 오랫동안 전화로 문구 하나하나를 지적했다. 이것은 선거법에 저촉될 수가 있고 저것은 너무 과장된 사실이어서 문제가 될 수가 있다고 수정을 부탁했다. 준법정신이 매우 강하고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치인의 느낌을 받았다. 20여 년간 운영 중인 토론토 최대 규모의 '에비뉴 꽃집'운영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선거가 끝나고 아직까지도 밴쿠버 지역구에서 후유증으로 요양, 병 치료 중이다.
몇 년 동안 다져온 토론토 구역에서 밀려나 청천벽력 같은 고통의 슬픔도 뒤로하고 밴쿠버 고난의 현장에서 발상을 바꾸었다.
5살 때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로 이주했다. 그 시절, 온간 인종차별과 고통을 상기하고 소외된 계층의 심정을 혜아리며 오랫동안 빈민가에서 함께 생활을 하며 봉사했다.
그런 불굴의 정신이 가가호호를 일일이 발로 뛰고 몇 번을 방문하며 전력투구했다. 주변에는 그를 신봉하는 지인들이 두툼한 벽을 형성하고 있다. 감동한 토론토 교민들이 밴쿠버로 내려와 선거운동원으로 내려와 봉사하다 선거가 끝나곤 바로 다음날 돌아갔다. 가슴이 징하다.
나는 넬리 신 국회의원을 보며 희망의 캐나다, 한국 교민 미래를 생각한다.
앞으로 10년 후면 캐나다 여성 총리로서 우뚝 서있을 지도 모른다
소수민족을 가장 잘 대변하고, 젊은이들의 교육전문가로서 그리고 영성이 풍부한 종교인으로서 자질을 두루 겸비한 정치인으로 성장하길 기도한다.
10년의 세월이란 눈 한번 껌벅이면 지나가는 세월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