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인 협회)
우정(友情),
신비로운 힘을 지닌 가슴 벅찬 단어이다. 인생의 연륜이 깊어 갈수록, 삶을 감동적으로 이끌고 포근하게 만드는 놀라움이 있다. 노년의 우정이 너무 아름다워, 만나면 눈물을 펑펑 쏟을 때가 있다. 친구를 넘어 손위, 손아래를 가릴 것 없이 오랜 지인 사이에 스스럼없이 나누는 정신적 유대감이 깊어 갈 때 고백처럼 나오는 표현들이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그의 저서 '법철학'에서 로마 신화의 미네르바와 동행하는 신조(神鳥) 부엉이를 가리키며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비로소 그 날개를 편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철학은 예측이 아니라 지나간 역사적 사실들이 분명해진 이후에야, 그 의미가 뚜렷해 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의 우정도, 깨달음이 무르익는 인생의 황혼녘에야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고 우정의 날개를 펴게 됐으니, 부끄럽지만 다행이다.
우정, 나에게는 매우 생소한 단어이었다.
한국전쟁, 어린 시절의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한 탓인지, 지금도 가슴속에는 절박함의 DNA가 늘 따라다닌다. 걸핏하면 가는 곳마다 단체와 클럽을 만들고 정강과 조직을 운영하며 참여했다. 끈끈한 인연으로 연분(緣分)을 남달리 많이 쌓아갔지만, 생활의 절박함이 느지막 이민 길에 떠밀려, 그 많은 인연의 끈을 순식간에 놓쳐 버렸다.
전혀 낯선 적막강산의 땅에서, 조그만 식당에 전력투구하며 일 년에 하루를 쉬고, 한 장소에서 사반세기 동안 한 곳에서 일하고 있다. 교회를 네 번이나 옮겨 다니고, 여러 곳의 단체에서 봉사하며 끈끈한 친구의 인연을 많이 만든다. 누가 물으면 절친한 친구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우정의 친구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깨닫지 못해, 우정을 감히 말할 수 있는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합기도 대 사범 윤병옥 (정각) 관장은 나에게 우정의 참 의미를 가르쳐 주고 깨닫게 한 스승과 같은 지인이요 어르신과 같은 친구이다. 첫 인연의 행운은 우연히 찾아왔다. 20여 년 전쯤이다. 정원의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마다 새집을 만들어 해마다 철새들이 찾아 드는, 지금도 소박한 집을 그대로 지닌 체, 천국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집, N.W 끝자락 집 앞을 지나다 눈을 치우는 한 분을 만났다. 그 당시 한국 교민들을 만나기란 무척 힘든 일이라, "한국 교민이세요?" 다가가서 물었다, 정각은 흠칫 놀라며 "그렇습니다만....." 초면인데도 따듯한 차 한 잔을 대접받았다. 집 앞의 골프장과 인근의 호수가 아름다워 이곳에 산다고 했다. 그다음 주일, 제일 장로교회에서 다시 만났다. 같은 교회 교인이라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나는 이미 정각 관장의 절친한 친구 민초 이유식 시인과는 캘거리 문인 협회 창단을 함께하며 자주 만났고, 손위 형님이신 대한민국 국선 입선 작가이신 윤병운 부부 화백과는 아들 미술대학 진학 때문에 17Ave '서울 화랑'에서 자주 만난 터이다. 윤 화백은 음악 감상에도 남다른 지식과 조예가 깊어, 딸의 대학 졸업 연주회에는 소중하게 소장하던 마리아 칼라스 Tape 한 세트를 선 듯 선물하기도 했다. 2년 전에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성악을 전공한 딸 순영이를 위해 그렇게 오랫동안동안 소장하고 아끼던 빈티지 오디오 마란츠 한 세트와 클래식 레코드 700 여장을 선물 받았다. 운반 도중에 고장이 나서 빈티지 오디오 전문 수리점에 의뢰해서 작년 겨울에야 겨우 완벽하게 수리를 했다. 하이엔드 한 세트도 따로 구입해서 번갈아 가며 이것저것 들어보며 오디오 초보자 입문에 들어선 것도 우정의 덕분이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 텔레스가 말하는 우정의 세 덕목 중에서 즐기기 위해서, 효용성을 위해서가 아닌 덕을 위한 우정일 것이다. 덕을 위한 우정이란 서로 존경하며 관계를 손상 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인생 최고의 덕목 중 하나이다. 우정은 과일처럼 서서히 익어가는 것이다.
더구나 그 당시 100세가 가까운 어머님이 알츠하이머 질환으로 양로원에 계실 때, 형제 분들의 노모의 지극한 수발에 대한 일화는 지금도 캘거리 교민 사회에 전설 같은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윤 화백은 임종시까지 매일 새벽 수영을 끝내고 어머니를 뵈었다. 나도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그리울 때는 혼자서 윤 화백의 모친을 찾아뵙곤 했는데 늘 의자에 앉아서 웃고 계셨다. 간호하던 직원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자제분들이 문병하는 사례는 유일하다고 했다. 언젠가 털신을 사서 신겨드렸더니 손을 꼭 잡아 주시던 따스한 손길을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 인연으로 정각 관장과는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친구의 인연을 맺었다. 주로 새벽 골프장에서 정각, 민초와 셋이서 만나며 우정을 싹 틔웠다. 상전벽해의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맺어진 인연의 우정 사이로 늘 신선한 바람이 흐른다. 인격이 흐른다. 철부지 같은 나에게 실망하지 않고 인내의 세심한 배려가 늘 썩지 않게 만든다. 정각 관장이 어느 날 불쑥 가게로 찾아왔다. 풍수지리학자가 시립 묘지 새로 분양하는 자리가 명당이라고 하니 죽어서도 같은 장소에 있어야 한다며 예약 증서를 가져왔다. 그다음날 분양을 받았는데 십여 년이 넘은 것 같다.
언젠가 정각을 필두로 20여 명의 교인이 가게로 들이닥쳤다. 새로 개척교회를 세우려고 하니 합류해야 된다고 혁명군처럼 닦달 했다. 가게에서 창립 예배를 보고, 윤관장의 도장을 빌려서 60여 명이 몇 개월 동안 주일 예배를 보았다. 삼고초려해서 호형호제하던 최고의 지휘자를 청빙했다. 한때는 교인 60여 명 중 성가대원 25영, 기악 연주팀까지 30여 명이 넘었다. 어느 날 수요예배에 임시 제직회가 열렸다. 느닷없는 신임 투표였다. 담임 목사와 지휘자의 신임 투표였다. 담임 목사가 사회를 진행했다. "담임 목사 유임을 지지하는 제직은 손을 들어 가결하고, 지휘자 유임은 비밀 투표로 처리하겠습니다." 누구와도 상의 없이 아내와 나는 그다음 주일부터 교회를 떠났다. 많은 교인들이 전화를 했으나 상처를 줄까 일절 받지 않았다. 한 해가 지나간 후 정각을 만났다. 상처와 인내의 기다림을 우정으로 포근이 감싸 주었다.
정각의 더덕 밭에서 옮겨 심은 더덕은 20여 년이 지나 지금도 나의 텃밭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작년 여름 병 병치레로 달포 정도 요양 중이었는데 귀한 수국 화분을 들고 불쑥 찾아 왔다. 정각이 돌아간 후에 뒤뜰의 텃밭으로 갔다. 수북한 잡초 사이의 더덕을 잡고 흔드니, 나를 알아보고 향기를 뿜어낸다. 더덕 향이 사방을 진동한다. 수국은 매일 아침 물을 주어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나 우정의 선물이라 정성껏 키우고 있다.정각 관장의 향기로운 체취다.
나의 집 이곳 이곳저곳에는 정각의 체취가 곳곳에 널려 보관되고 있다. 야산의 무거운 돌을 주워 받침대를 만들어서 조각하듯 밤새도록 붓글씨로 아름다운 시를, 향내 나는 나무 판 위해 글씨를 조각하고, 메모지 함에는 성경 구절이 정각 독특한 필체로 번득인다. 십자가가 달린 새집을 만들어 보냈는데 조르라기 작은 새가 차치하고는 로빈새 보다 먼저 와서 둥지를 틀고 울어댄다. 가을에 나뭇가지들로 실내를 꽉 막아놓고 떠났다.
정각은 한때는 수준 높은 공중 부양술을 근간으로 청와대 경호팀 무술 지도를 한 후 캘거리에서 35년이 넘도록, 여든의 나이가 가까워 오는데도 제자들 육성에 여념이 없다. 오래전, 대낮 점심시간에 맥주를 한잔 거나하게 걸친 채 우리는 시청 방향으로 한참을 걸었다. 정각을 알아보는 많은 제자들이 "하이, 마스터 윤"하며 분주하게 인사를 건넨다. 의사 공무원 사업가 등 이 사회에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600여명의 검은띠 유단자를 배출하고 제자가 30,000명에 이른다. 나는 '윤무관 합기도 챔피언쉽 대회'에서 하모니카로 애국가 반주를 한다. 다섯 해가 넘었다. 제자들에게 아름다운 패배 겸손한 승리를 가르친다. 학모들의 표현대로 이미 정신적인 지주다.
13년 키운 애완견이 세상을 떠나자 한동안 만날 때마다 목이 메고 눈시울을 붉히더니 사소한 감기에도 시름 거린다. 애완견의 생전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한다.
우정은 정情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만 친구를 선택하고 유지하는 데는 높은 이성적 판단을 요구한다. 키케로는 우정론에서 사랑하고 나서 판단하자 말고 판단하고 난 후 사랑하라고 주문한다. 감성과 이상의 완벽한 조화를 가진 정각의 우정 앞에서 그의 인품이 너무 아름다워, 작년에 다섯 차례 점심을 하면서 울먹거리기만 했다. 그의 우정 앞에 서면 세상 살만하다.